쉽게 씌여진 글

서른즈음에

눈써비 2011. 12. 6. 01:30
점점 더 멀어져간다..

한쿡 나이로 서른이 될 즈음에 회사에서 노래방을 가면 무던히도 불러 제꼈었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 무수한 인연들
사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게 아니다.

국제화 시대에 발맞추어 방금 REAL 서른이 되었다. 

내가 조아라 하는 두 인물은 서른 즈음에 무얼 하고 있었을까?

일단 이분


우리네 표현으로 만 29살 이던 어느 따스한 봄날에 대해 훗날 회상을 했다.

1978년 4월 어느 날, 오후에 야구를 보러 갔다.
외야 쪽 스탠드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타자가 첫 볼을 외야 2루타로 쳐냈다.
그때 문득 소설을 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갑작스런 계시 같은 것이었다.
이유도 설명할 방법이 없다.

현재까지 엄청 정력적으로 많은 단편,장편, 번역서(작가로서 금기와 같은)를 남기신 이분의 첫 데뷔작은 2루타를 보고 집필했으며 만 서른에 출간된 바로 이것!


그러나 변명할 마음은 없지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는 처음에도 말했듯 아무 생각 없이 쓴 소설이다. 그것이 이 소설의 장점이기도 하고 문제점이기도 하다. 이런 점은 소설적 테제로는 성립한다. 하지만 소설로는 어딘가 좀 불충분하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어느 한쪽만 언급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당시 이 소설을 새로운 소설적 테제로 평가하는 비평도 있었고, 소설로서의 불충분함을 공박하는 비평도 있었다. 그러나 내 개인적으로는, 모두 종합적인 비평으로는 부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테제이기 때문에 불충분하고, 불충분하기에 테제로 성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느 한쪽을 제거하면, 다른 한쪽이 성립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자신의 기분을 그저 정직하게 문장으로 환치하고 싶었을 뿐이다.




소설적 테제로는 성립하지만 소설로는 불충분한 참 아리송한 소설.
어쨋든 이 소설이 성공해서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다고 스스로도 말씀하신 나름대로의 성공작이다.
이 소설이 실패했으면 다시는 소설같은거 쓰고 싶지 않았다고 어디선가 내뱉으셨다.
음... 그랬다면 나도 하루키를 몰랐겠지.

다음 인물을 볼까


이분은 평범(?)하게 자라온 하루키에 비해 자신의 분야에서 워낙 천재적이다.
데뷔는 20대에 하셨고, 7살부터 영화를 찍으셨고 (니가 모차르트니?) 만 서른에는..


거뜬하게 이정도 영화를 만들어 주셨다.
마흔에는 인셉션정도 손쉽게 만드셨는데..아직 마흔이 안되봐서 불혹(不惑)이면 원래 누구나 저정도 하는거 아냐? 라고 시건방떨고 싶어지네.
어쨋든 그 공자님도 이립(而立)(학문의 기초가 확립) 정도로 약하게 말씀하신 나이에 저런 영화를 만들다니.

간단하게 내가 좋아하는 인물들이 서른즈음에 무슨짓을 했었는지 살펴보았다.
오늘부터 서른이 되었으니 뭔가 저들에게 뒤쳐지지 않게 한건 해봐야겠구나 하면서 왠지 잠자는 것도 아까워진다.
(절대 그럴리는 없고 푹 잘 자겠지만.)
서른 - 어린 나이가 아니다. 
불혹이 다가왔을때 내 얼굴에 책임도 지고 시건방정도 떨어보려면 지난 10년이 아주 중요했었겠지만 앞으로의 10년 또한 중요하겠지.

자, 그럼 좋은 꿈 꾸러 가야것다.


 


 
반응형

'쉽게 씌여진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진 감독 연극 "서툰 사람들"  (2) 2012.07.03
신도리안 이벤트  (0) 2012.03.30
아이폰4S  (3) 2011.10.05
무상급식이라고?  (2) 2011.08.23
나는 부자가 되고 싶은가  (4) 2011.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