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자기혁명 독서법

눈써비 2023. 10. 14. 12:36

2002년 8월 1일 오전 7시

양쪽 발바닥이 너덜너덜해져 간단한 소독 후 들것에 실려 연대 의무대에 입실하게 된다.

사실 소독이 나한테 간단하진 않았다. 거의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면서 소독 당했다.

꾹 참으면서 소독 받으니까 구경온 각 소대 병장들이 그냥 소리질러도 된다고 해서 무장해제.

소위 말하는 500원 이런 것이 아니라 지폐였다.

평발특성상 발바닥의 거의 전부가 너덜너덜했었다.

 

출발은 2002년 7월 31일 오후 7시였다.

12시간의 행군 중 언제부턴가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서 거동이 불편했지만 도착까지는 참아보고 싶었다.

물집 잡힌 후  걸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처음 출발이 불편하지 5분정도 걷다보면 걸을만하다.

휴식 후 5분 참아내면 꾸역꾸역 몇 시간이고 걸을 수는 있다.

해당 훈련은 도착 후 쇼(공지합동훈련) 를 감상하다가 차를 타고 복귀하는 훈련이기에 도착 행군이 전부였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도착 후 병원에 실려가는 것은 민폐가 아니기에 끝까지 걷어보자 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웃긴데,

도착하자 마자 일병 주제에 손 들고 저 이제 못걸어요. 라고 했고

양말벗고 조심스레 발바닥을 보여주자마자

 

소대장이 소리지르면서 달려갔고,

순식간에 온갖 간부들과 병장들이 몰려들고, 정훈장교가 와서 사진 찍고 난리였다.

 

나중에 부대에 돌아와서 양말 빨래 하는데 피가 끝도 없이 나오긴했다.

초록색 양말이라서 그렇게 티가 안났던거 같은데 세면대에  계속 피가 빠지지 않았었다.

 

내가 어떤면에서 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로 인해 일병이었던 이후의 삶도 어느정도 편해진 듯 하고 (다들 어느정도 인정해버린 분위기)

스스로의 독함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무엇인가 거창하게 얘기를 꺼냈다.

반전이다.

앞뒤가 안맞아 보이지만 싫증을 쉽게 내는 편이다.

반복되는 작업은 거의 해내지 못하고, 

2004년에는 스캔 알바를 하다가 너무 지겨워서 일주일만에 사람을 구하고 도망쳤다.

(지인 통해서 구했는데 그 사람이 편한일 줬다고 너무 고마워했다. 사실 내가 너무 고마운데..)

 

어떤 것을 이겨낸다. 견딘다. 달성한다. 

생각하기 따라 간단 하기도 하고 엄청나기도 한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간단한 일이 나에게는 엄청 고된 일일 수 있고, 나 스스로도 상황에 따라서 그때 그때 다르기도 하다.

 

현재 핑크팬더님이 하는 52 독서 11기에 참여 중이었는데,

https://blog.naver.com/ljb1202/222587831585

 

52주 독서 11기 모집

52주 독서 11기 모집합니다. 2022년 새해에 저와 함께 52주 독서모임 하실 분 오세요~!! 수많은 분들이 이...

blog.naver.com

 

작년 초 시작과 동시에 52주 동안 이런 지루한 게임을 해내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빠르면 2년 늦으면 10년 정도 느긋하게 생각했다.

결국 2년차로 한 기수를 더 진행해서  11기를 졸업하게 되었다.

 

좋게 해석하면 스스로 메타인지를 잘해서 포기 안하고 두 해에 걸쳐 성공한 것이고,

나쁘게 해석하면 처음부터 안된다고 포기하고 시작하니까 첫 해에 실패한 것이다.

 

무엇이 되었던 누군가에게는 쉬운,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52주 독서를 달성!

(사실 14기를 병행하다보니 추가된 책들이 있어서 14기 졸업도 같이 하기 위해 3권 정도 더 읽어야한다.)

 

중간에 내가 읽고 싶은 책들도 읽긴 했지만 그래도 꽤나 참은 편이다.

돌이켜보니 학창시절에도 필독서나 추천도서들도 전부 읽지는 않고 내가 원하는 책들만 읽었던 것 같다.

 

이 나이 먹고,

인생에서 처음으로 남이 설계해준 책들을 2년에 걸쳐서 꾸역꾸역 읽어본 것이다.

대부분의 책들이 개인적으로도 좋은 책들이라서 내가 설계 했다면 신나게 달성했을텐데,

이것들을 "견뎌야" 하고 "달성해야"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여러 책들에 나왔듯이 참으로 인간적인 것 같다.

(재미있는 책들도 많은데 "꾸역꾸역" 읽는다는 표현까지 했다.)

 

이제  졸업했으니 "자기혁명 독서법"으로 가야겠다.

 

핑크팬더님 좋은 책들 골라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11기 졸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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