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씌여진 글

광해후기를 가장한 학창시절의 추억

눈써비 2012. 10. 2. 19:18

한창 피가 들끓던 그 시절
형같은 선생님 중에 "담배귀신"이 있었다.

쉬는 시간이면 화장실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과 소위 "짱" 보는 아이들이 있었다.
(짱본다 : 우리시대때 언어로 망을 본다. 즉 선생님이 오는지 보는 행위)
요새 말로 빵셔틀이라는 우리때는 꼬붕이라는.. 
노는 애들 옆에 붙어서 매점 심부름도 하고 담배필때 망도 때려주는 초밥들
정작 지들은 담배필때 짱봐주는 애들 없어서 걸리는 그런 녀석들.
그리고 절대 안걸리는 잘나가는 녀석들.

화장실 입구는 수돗가처럼 수도꼭지가 5개정도 있고 대략 세수하기 위해 줄선 아이들만 30여명.
담배귀신이 나타나서 조그마한 체구로 세수하려고 줄을선 아이들을 헤치고 바람처럼 안으로 들어가고
짱보던 아이들의 신호로  모두 담배는 집어던졌지만
"너 너 너 "
라고 정확히 지목하는 훌륭한 선구안.
변명의 여지없이 소위 잘나가는 아이들이 줄줄줄 끌려간다.
물론 짱만 보던 초밥은 살아남았다.

심지어 능력을 인정받고 이사장님께 하사품인 "양복" 한 벌까지 받으셨던 담배귀신.

지나고 생각해보니 나는 그 국어선생님이신 "담배귀신"에게 철저하게 사상교육을 받았다.
영화 광해를 보면서 문득 담배귀신이 그리워졌다.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에 숨겨진 의미
춘향전에 나온 지조의 의미
이방원이 조선 건국에 쏟은 힘과 흘린 피
광해의 훌륭한 외교와 인조의 굴욕
윤동주님의 지식인의 고뇌

등등 참으로 훌륭한 사상을 전수해주셨다.
아마도 대학때 책읽고 운동만 하셨을테지.

어쨋든 전수 받은 내용 중 광해부분의 기억을 떠올리며 현재의 주관을 개입해보자면,

실제로 광해가 후금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쳤다면 明의 命이 길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명에대한 의리를 완전 저버리지 않고 (사실 완전 저버린거지만) 후금과의 실리를 챙기는 상황판단력.
실제로 인조는 머리 박는 소리가 들리고 피를 흘리며 소위 대가리 박고 전진하는 수모를 당했으니..
그야말로 훌륭한 외교였다고 생각할 수 밖에..

그리고 피가 들끓게 만드는 화냥년이라는 용어도 생겼으니..
(이런 개같은 조상님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는 폐위 당한 왕이니 그것또한 큰 실책이라 생각된다.
아무리 걸출한 실력을 갖춘 축구 선수도 유리몸이면 쓸모 없듯이(응? 별로 적절하지 않은 비유인가)
그런 모든 것들마저 무마하고 천수를 누리며 정치를 했어야지!
왜 정치를 잘 못해서 폐위를 당하신겐가!

어쨋든 나에게 훌륭한 사상교육을 해주신 담배귀신님.
심지어 담배피는 애들을 잡아낼때도 잔챙이가 아닌 배후를 노리시는 훌륭한 선생님.

15년여가 지나고 보니 그때 하신 수업외의 말씀들이 제 사상의 기초가 되었네요.

오늘 글을 빌어 광해님과 담배귀신님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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